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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은채 - BRIGHT holiday] 퍼스트룩 168호 / 손더게스트 종영 후 인터뷰
    인터뷰 2019. 2. 27. 13:56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어느 날, 2018년 바쁜 한 해를 보냈을 여배우 정은채와 남들보다 이른 연말 자리를 가졌다. 행복한 연말연시를 기다리는 그녀의 모습을 담은 화보를 촬영한 것. 우리는 논현동에 위치한 스튜디오를 로맨틱한 공간으로 꾸미고 정은채를 초대했다 초겨울 낮의 따스한 햇살, 투명하게 빛나는 정은채의 피붓결, 반짝이는 주얼리.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모니터에 모여든 스태프는 "후보정 작업이 필요 없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오랜 시간 함께한 스태프와 정은채의 호흡 역시 완벽했다. 정은채의 결점 없는 매끈한 피부와 섬세한 연기력, 흐트러짐 없는 헤어와 메이크업 스타일링. 촬영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끝났고 남은 문제는 단 하나. 수많은 A컷 중에 B컷을 골라내는 일이었다. 완성된 화보 컷을 고르는 내내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아쉽게 탈락한 A컷 같은 B컷들이 계속 눈에 밟혀서. 고심 끝에 완성한 화보를 공개하며 독자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퍼스트룩> 독자들 모두 정은채와 함께한 홀리데이 화보처럼 아름다운 연말을 보내길 바란다.

    editor 민지예

     

     

     

     

    드라마가 끝난 지 벌써 한달 정도 지났어요. 촬영 내내 무척 바쁘고 정신없었죠? 이제 어느 정도 일상으로 돌아왔을까요?

    촬영이 끝나자마자 짧게 여행을 다녀왔어요. 제주도로 떠났었는데, 푹 쉬면서 피로도 털어내고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지난 몇 개월 동안 간절히 바라던 휴식이었거든요. 물론 촬영장에서만 얻을 수 있는 활력과 즐거움도 소중하지만, 몇 달 동안 그 북적거림 속에 있다 보면 조용히 스스로를 곱씹는 시간이 간절해져요. 그래서 보통 작품을 끝내고 나면 잠시라도 어디론가 떠나곤 하죠. 제주도는 갈 때마다 새롭고 낯선, 특별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워낙 걷는 걸 좋아해서 보통은 몇 시간씩 그냥 걸어요. 숲 냄새도 맡고 새소리도 듣고 바다도 바라고보요. 이런저런 생각이 깊이 파고들기도 하고 반대로 비오기도 하면서 오롯이 제게 집중할 수 있었어요.

     

    <손 더 게스트>는 방영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은 작품이에요. 국내에서 보기 쉽지 않은 소재를 다룬 데다 이야기 전개 방식도 독특해서 배우 입장에선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 또한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부터 신선한 소재와 이야기에 끌렸어요. 과연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사실 사람들의 기대가 큰 만큼 우려하는 시각도 클 거란 생각에 조금 부담도 됐는데, 너무나 좋은 연출진과 스태프로 그리고 배우들이 함께해서 무사히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로 사람들 사이의 호흡이 무척 잘 맞았어요. 한 작품을 끝내며 함께한 사람들 모두가 좋은 기억을 갖기가 쉽지 않은데, <손 더 게스트>는 다 같이 기뻐하며 웃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해요.

     

    연기 면에서도 호평을 받았죠? 은채 씨에게도 기억에 오래 남을 작품일 것 같네요.

    장르나 캐릭터가 특별해서 끌리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걸 해보자'는 마음에서 선택한 작품이었어요. 제작진과도 시청자들이 익숙하게 봐온 여 형사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적이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논의를 많이 했고요. 그렇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처음'이 많았어요. 연기 톤도, 외형적인 이미지도, 액션 스타일도 처음 시도해 본 것들이에요. 그래서인지 <손 더 게스트>는 제게 마치 데뷔작 같은 느낌으로 남았어요. 다양하게 시도해보며 여러모로 시야가 넓어진 것 같기도 하고요. 뭐든 처음이 어려운데, 이번에 나름 좋은 평가를 얻고 대중적으로도 사랑을 받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얻은 것 같아요.

     

    일상으로 돌아온 요즘, 가장 관심 갖고 즐겁게 하는 일이 뭔가요?

    지난 한 달여는 정말 그저 잘 쉰 거 같아요. 촬영하는 몇 달 동안 생활 리듬이 완전히 깨져서, 다시 규칙적으로 제 패턴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건강을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하고, 평소 이런저런 글을 쓰거나 메모하는 걸 좋아해서 틈나면 뭔가 끼적이기도 해요. 사실 촬영 중에는 개인 시간이 전혀 안 나니까 취미 생활을 즐길 겨를이 거의 없고, 그래서 뭔가 제대로 써본 지도 한참 전이긴 해요. 종영 파티 때 저와 같이 일한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편지를 써준 게 다예요. 제가 워낙 표현이 없고 무뚝뚝한 편이라 말보다는 글을 마음으로 전하는 경우가 많아요.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편지나 카드를 쓰는데, 그러면서 저 자신도 돌아보고 마음을 정리하기도 하죠. 제게는 뭔가를 쓰는 일이 스스로를 다잡는 방식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아니면 그림이나 공연을 보러 가거나, 음악을 듣고 노래 부르는 것도 즐겨요. 주로 가사에 집중할 수 있는 잔잔한 선율의 곡을 좋아해요. 자극적이지 않고 편안하게 마음을 살필 수 있는 노래요.

     

    개인적으로 은채 씨 목소리를 참 좋아해요. 직접 곡을 만들어 부른 적도 있죠? 음악 활동 계획은 혹시 없나요?

    저도 제 목소리에 대해 한번 생각해봤는데요, 이렇게 누군가와 이야기 나눌 때와 화면을 통해 들릴 때가 너무 달라서 좀 놀랐어요. 똑같은 사람의 목소리라 해도 어떤 매체에서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굉장히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특히 올해 두달 정도 라디오 DJ를 맡으면서 처음으로 제 목소리에 제대로 귀 기울여본 것 같아요. 소리가 만드는 파동, 그리고 그것을 주고받는 이들 사이의 교감 같은 것에 대해서도 매력을 느꼈고요. 꼭 노래가 아니라도 라디오나 내레이션 같은 소리를 매개로 한 활동도 종종 해보고 싶어요. 사실 지금도 가끔 노래를 만들고 있고, 언젠가 또 앨범을 내고 싶다는 생각은 하는데요. 시간도 부족하고 당장은 여의치가 않네요. 다만 관심은 계속 붙잡고 있으려고 노력해요.

     

    은채 씨를 보면 참 다재다능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요. 특히 예술적 영감이 뛰어난 편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예체능 쪽에 관심도 많고 이것저것 하고 싶어했던 것 같긴 해요. 돌이켜 보면 아마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은 대부분 시간이나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혼자 뭔가에 몰두하는 것들이에요. 그중에서도 유독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우라는 직업에 호기심을 가졌던 것 같고요. 영화에 끌린 이유라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영화가 종합적인 예술이기 때문일 거예요. 영화에는 다 들어 있잖아요. 음악도, 소리도, 그림도, 색도, 빛도, 그리고 사람도요. 가장 입체적이고 또 그렇기에 가장 환상을 품게 되는 분야인 것 같아요.

     

    하지만 좋아하는 일이 '일'이 되는 건 또 다른 문제죠. 배우란 직업을 선택하고 또 배우로서 살아가는 지금에 얼마나 만족하나요?

    배우가 되기까지는 호기심에 이끌려 걸어온 것 같아요. 좋아하고 궁금하니까. 더 많이 알고 싶었고 깊게 들여다보고 싶었거든요. 좋아하는 일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다만 막상 시작한 후로는 '이 일이 과연 내게 잘 맞는 일인가.', '내가 이 일을 하는게 누군가를 해롭게 하는 건 아닐까'와 같은 고민을 끊임없이 하게 돼요. 어쨋든 내 연기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누군가와 감정을 교류하는 일이니까요. 그렇게 고민하다 보면 문득 겁이 나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그래요. 하지만 저 스스로도 조금 신기한 건, 그래도 아직까지는 '배우'라는 일이 즐겁고 좋다는 거예요.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계속 가슴 뛰게 만들까요? 

    뻔한 대답처럼 들릴 것 같지만, 정말 '사람'인 것 같아요. 아이러니하게도 '혼자'좋아서 찾아낸 일들 속에서 '사람'을 만나게 돼요. 좋은 작품을 만나고 새로운 사람들과 일하는 건 어떻게 보면 제게 운명처럼 주어지는 기회 같은 건데, 그런 행운을 맞이하며 느끼는 기쁨이 크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사람을 통해서 상처도 받지만 그들을 통해서 에너지를 얻는 경우가 더 많고요. 제가 계속 발전하고 지속해 나가야 할 이유가 그런 데 있는 것 같아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은채 씨에게는 줄곧 '아름답다', '신비롭다'란 수식이 따라다녔어요. 자신을 규정하는 이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아요. 특정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이 없어서일 거예요. 그냥 제게 있는 어떤 면을 사람들이 찾아내서 좋게 봐주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또 다른 수식이나 이미지가 생긴다고 해도, 그건 제가 뭔가를 노력해서가 아니라 어떤 작품을 통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일거예요. 늘 새롭고 모험적인 일에 대한 갈망이 있기 때문에 기회가 생긴다면 언제든 도전하고 변화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억지로 뭔가를 만들고 바꾸고 싶진 않아요. 배우로서 지금까지도 충분히 과분할 만큼 좋은 역할들을 만난 것 같고, 만약 부족했다면 제 역량이 못 미쳤기 때문일 거예요. 앞으로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욕심부리지 않고 단단히 저를 다지면서 자연스럽게 발전해가고 싶어요.

     

    어느덧 12월이네요. 곧 또 한살을 먹는데, 아무래도 여배우로서 나이 듦에 대해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물론 배우라는 직업상 끊임없이 외적인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겠죠. 어떻게 보면 좀 더 예민한 잣대로, 엄격한 시선으로요. 하지만 저는 연기 활동에서 또는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연스러움'이라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면 드는 대로, 또 거기서 배어나는 느낌이 있잖아요. 그냥 변화를 인정하고 바라보면 또 새로운 즐거움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나이를 잘 먹는다는 건 뭘까'를 고민하는 건 배우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된 숙제일 거예요. 한 가지 깨달은 건 점차 제가 사는 모습이 얼굴에 드러난다는 거예요. 예전에 비해 잠을 몇시간만 못 자도 바로 낯빛이 어두워지고 눈빛이 흐려지더라고요. 꾸며 낼 수가 없는 거죠. 그렇게 때문에 항상 깨끗한 정신과 건강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 같아요. 배우로서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에너지를 주고 받을 테니까요. 진정으로 아름다운 배우가 되기 위해 좀 더 또력하고 좀 더 건강해지고자 애쓰고 있어요.

     

    연말에 특별한 계획은 없어요? 새해는 어떤 모습으로 맞게 될 것 같나요?

    그냥 가까운 사람들과 만나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보내지 않을까요? 그게 제일 즐겁고 좋은 것 같아요. 제가 보기보다 무뚝뚝한 편이라 원래는 주변 사람들에게 감정을 잘 못 드러냈어요. 마음은 가득한데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꺼내기가 어찌나 어색하고 힘든지요. 그런데 해가 갈수록 점점 사람들에게 마음을 꺼내놓고, 표현하는 게 좋더라구요. 저 자신도 신기할 만큼 이제는 사람들에게 안기기도 하고 칭얼대기도 해요. 이번 연말에는 저도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드러내고 마음을 표현하려고 해요. 사실 2018년을 돌아보면 무척 좋은 한 해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작품,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 안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고요. 내년에는 꼭 올해만큼만, 재미있고 열심히 살았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