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채 - BLING'S CHOICE] Bling 2013년 06월호 28호
정은채
언젠가부터 흰 피부에 큰 눈을 가진 여자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으로 그녀에 대한 이미지가 박혀서 일지도 모르지만 수줍은 미소와 어리숙한 말투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나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기도 했다. 결국, 그녀를 만났고 직접 만든 화관을 씌워 정은채라는 이미지를 증폭시키려 했다.
에디터 김혜미 포토그래퍼 권중호
쉽게 볼 수없는 얼굴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보고 우리는 타고났다고 말한다. 에디터는 정은채를 보고 타고났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하얀 피부에 쌍커풀이 질 듯 말듯한 눈, 그리고 한국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높은 코에 눈을 뺏겼다. 단순히 예쁜 것이 아닌 형용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여배우 정은채였다. 그런 그녀를 한강으로 불러냈다. 스튜디오에서 찍는 것이 가장 손쉬울 수는 있지만 좋은 날, 푸른 풀 앞에 정은채라는 오브제를 세워놓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꽃으로 만들고 싶었다. 한강에 도착한 정은채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단출한 스태프들과 작업을 하니 놀러 온 것 같아 편하다는 말도 했다. 인터뷰가 있기 전 일주일 동안 그녀는 대한민국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광고를 찍은 탓에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 기분 좋은 촬영을 마치고 한남대교에 마련된 작은 카페에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중학생 때부터 영국에서 지내온 정은채는 성인이 될 때까지 그곳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자랐다. 학생 시절은 엄격한 기숙사 안에서의 생활만 고집했다. 그러다 보니 갇혀 있는 곳에서 홀로 그림 그리기에 집중했고, 결국 단 한번의 미술 수업도 받지 않고 세인트마틴스 예술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홀로 있는 순간에 그림만 그린 것은 아니다.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고 또 다른 꿈을 키웠다. 그 꿈을 한국에 와서 실현하고자 한 것은 22살 때다. 정은채는 서울을 찾았다. 부산 출신인 그녀에게 서울은 영국 못지않은 외로운 땅이었다. 연극을 하기 위해 무작정 대학로의 문을 두드렸고 유명한 교수님을 찾아가 상담을 받기도 했다. 회사를 찾기보다는 연기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고자 했다. "진짜 발품 팔아서 2년 동안 오디션만 보러 다녔어요. 연극 하는 다양한 사람을 만났죠, 막연하게만 생각해온 연기가 무엇인지 알게 된 시간이었어요. 그러다 회사를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에 온지 2년 만에 회사를 찾았죠." 이후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신비롭게 생긴 외모 덕에 각종 영화나 드라마의 주연을 맡게 된 것이다. 하지만 큰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고심하던 순간, 홍상수 감독을 만나게 되었다. 첫 만남에 술잔을 기울였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 꿈만 같았어요. 정말 좋아하는 감독님이거든요. 언젠가는 같이 작업을 하겠지 생각해왔는데, 생각보다 더 빨리 기회가 온 거예요." 정은채는 6월 말쯤, 홍상수 감독과 또 다른 작업에 들어간다. 꿈은 이뤄진다는 말이 그녀에게 딱 들어맞는 문구다. 연기자의 길을 잘 이어가고 있는 그녀는 또 다른 꿈을 실현하기에 이르렀다. 사비를 들여 직접 앨범을 낸 것이다. 어떤 음악일지 기대하고 들은 음악은 본인만의 독특한 색깔과 닮아 있었다. 잔잔히 번져오는 때묻지 않은 맑은 목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어루만져주었다. 투명함이 가득 전해지는 소녀 같은 음악이었다." 이것 역시 무작정 시작했어요, 저도 어떻게 앨범까지 나오게 되었는지 신기해요, 평소 알고 지내던 프로듀서와 뮤지션들에게 함께 작업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죠. 그렇게 1년여 동안 틈틈이 작업해왔어요. 음악이나 연기나 제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고 느끼시면 되요, 특별한 의미전달이나 의도는 없어요.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작업이기에 실현했을 뿐이죠." 총 5곡의 자작곡이 실려 있는 그녀의 첫 번째 앨범은 어릴 적부터 홀로 지내온 영국에서의 감정을 담은 '이방인'을 시작으로 첫사랑의 설렘을 담담히 풀어낸 '잘 지내나요', '소년소녀'와 이별의 아쉬움을 따뜻하면서도 음울하게 풀어낸 '달'과 '여름바다'가 있다. 본인이 겪은일을 천천히 풀어낸 하나의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그녀가 해온 일을 보면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저돌적인 태도로 본인의 길을 개척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 역시 그녀의 또 다른 매력 요소 중 하나가 아닐까? 지금부터 시작이라 외치는 정은채의 또 다른 미래가 기대될 따름이다.